제철 오렌지와 비수기 오렌지는 정말 다른 과일이더라
오렌지는 일 년 내내 마트에 있다. 겨울에도 있고 여름에도 있다. 과일 코너 한쪽에 항상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 제철이 언제인지 잘 모르고 살았다. 그냥 오렌지는 사계절 과일인 줄 알았다. 귤이 겨울 과일이고 수박이 여름 과일인 것처럼, 오렌지는 계절이 없는 과일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건 우연이었다. 겨울에 산 오렌지와 여름에 산 오렌지를 먹어보고 나서.
작년 1월이었다. 마트에서 네이블 오렌지를 샀다. 네 알에 4900원. 집에 와서 하나를 잘랐다. 칼이 껍질을 뚫고 들어가는 순간 향이 확 올라왔다. 오렌지 특유의 그 상큼한 향. 손에 묻은 즙이 향기로웠다. 단면을 보니까 과육이 선명한 주황색이었고 즙이 표면에 맺혀서 반짝거렸다.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달았다. 그냥 단 게 아니라 신맛이랑 같이 오는 복합적인 단맛. 즙이 입 안에서 터지면서 혀 위에 퍼졌다. 한 조각을 더 먹었다. 또 달았다. 네 알을 이틀 만에 다 먹었다. 두 알 더 살걸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여름이 왔다. 7월쯤이었나. 마트에서 오렌지를 봤다. 겨울에 맛있게 먹은 기억이 있어서 또 샀다. 네 알에 5900원. 겨울보다 천 원 비쌌다. 비싸면 더 맛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최소한 비슷하겠지 싶었다.
집에 와서 잘랐다. 칼이 들어가는 느낌부터 달랐다. 겨울 오렌지보다 껍질이 두꺼운 느낌이었다. 향도 약했다. 안 나는 건 아닌데, 겨울에 맡았던 그 확 올라오는 향이 아니었다. 좀 멀리서 나는 향 같았다. 단면을 보니까 과육 색도 연했다. 겨울에 봤던 진한 주황색이 아니라 좀 옅은 주황. 즙도 적었다. 표면이 반짝거리지 않았다.
한 조각을 먹었다. 시었다. 단맛이 아예 없는 건 아닌데, 신맛이 앞에 서 있었다. 겨울 오렌지에서는 단맛이 먼저 오고 신맛이 뒤따라왔는데, 여름 오렌지는 그 반대였다. 신맛이 먼저 치고 들어오고 단맛은 끝에 아주 살짝. 두 조각 먹고 냉장고에 넣었다. 나머지 세 알은 사흘에 걸쳐 억지로 먹었다. 맛이 없진 않았는데 기대에 못 미치니까 손이 안 갔다.
그때부터 좀 궁금해져서 찾아봤다. 오렌지 제철은 보통 12월에서 3월 사이라고 한다.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한국에서 주로 먹는 수입 오렌지 기준으로는 겨울이 제철이다. 제철에 수확한 오렌지는 나무에서 충분히 익은 상태라 당도가 높고 즙이 많다. 비수기에 나오는 오렌지는 다른 반구에서 온 것이거나 저장된 것이라 신선도가 떨어질 수 있다고.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먹어본 것과 정확히 일치했다. 겨울 오렌지가 달고 즙이 많았던 게 기분 탓이 아니었던 거다. 여름 오렌지가 시고 즙이 적었던 것도. 같은 과일인데 계절에 따라 이렇게 차이가 난다는 게 신기했다. 마트에서는 둘 다 똑같이 생긴 오렌지로 놓여 있는데.
외할머니는 오렌지를 겨울에만 사오셨다. 어릴 때는 그게 왜 그런지 몰랐다. 그냥 겨울이 되면 오렌지가 나오고, 여름이 되면 안 나오는 줄 알았다. 근데 여름에도 마트에 오렌지가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혼자 살면서부터다. 그때 생각했다. 외할머니가 겨울에만 사신 건 여름에 없어서가 아니라 겨울 게 맛있으니까 그랬던 거구나. 제철을 아셨던 거다.
외할머니는 오렌지를 자를 때 칼이 아니라 손으로 까셨다. 윗부분에 칼집을 살짝 내고 거기서부터 껍질을 벗기셨다. 껍질이 두꺼워서 손으로도 잘 벗겨졌다. 하얀 속껍질이 그물처럼 과육을 감싸고 있었는데, 외할머니는 그것도 어느 정도 떼어내고 한 쪽씩 떼어주셨다. 그 한 쪽을 입에 넣으면 얇은 막이 이빨에 걸리다가 터지면서 즙이 나왔다. 그 순간이 좋았다.
지금 나는 오렌지를 칼로 자른다. 반으로 자르고 또 반으로 자르고. 외할머니처럼 손으로 까는 건 귀찮다. 손톱 밑에 껍질 조각이 끼는 것도 싫고, 하얀 속껍질 떼는 것도 번거롭다. 칼로 자르면 그런 과정이 생략된다. 편하다. 근데 가끔 생각한다. 칼로 자르면 껍질을 까는 그 순간의 향을 놓치는 것 같다고. 손으로 껍질을 뜯을 때 손가락 끝에서 퍼지는 그 기름진 향. 칼로 자르면 그게 덜하다.
겨울 오렌지와 여름 오렌지의 차이를 알고 나서 달라진 게 하나 있다. 이제 오렌지는 겨울에만 산다. 일부러. 여름에 과일 코너를 지나가다가 오렌지가 보여도 안 산다. 겨울까지 참는다. 12월이 되면 그때 산다. 그러면 확실히 맛있는 오렌지를 먹을 수 있다.
이게 제철의 힘인 것 같다. 일 년 내내 먹을 수 있는 것과 가장 맛있을 때 먹는 건 다른 이야기다. 외할머니는 그걸 아셨고, 나는 서른이 다 돼서야 직접 비교해보고 알았다.
올겨울에 산 오렌지는 좋았다. 잘랐을 때 향이 부엌 전체에 퍼졌고, 즙이 도마 위로 흘러내렸고, 한 조각 먹자마자 두 번째 조각에 손이 갔다. 그 오렌지 네 알은 하루 만에 없어졌다.
다음 겨울이 기다려지는 이유가 하나 늘었다.
오렌지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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