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에서 바나나 한 송이를 들고 계산대 앞에서 한참 서 있었다

 마트에 간 건 계란을 사려고였다. 계란만 사면 되는 거였다. 근데 마트라는 곳이 그렇다. 입구에서 과일 코너를 지나가게 되어 있다. 동선이 그렇게 설계되어 있다. 계란은 안쪽에 있고, 과일은 입구 바로 옆에 있다. 안 볼 수가 없다.

바나나가 눈에 들어왔다. 노란색이 선명한 놈들이 쌓여 있었다. 한 송이에 1990원. 싸다. 과일 중에 바나나가 제일 싼 것 같다. 크기 대비, 무게 대비, 열량 대비. 가성비로 따지면 바나나를 이길 과일이 별로 없다. 그래서 집었다. 반사적으로.

밝은 마트 형광등 아래 장바구니 안에 놓인 노란 바나나 한 송이

집어들고 나서 생각이 시작됐다. 한 송이가 다섯 개였다. 다섯 개. 혼자 사는 사람한테 바나나 다섯 개는 많다. 하루에 한 개씩 먹으면 닷새. 근데 나는 하루에 한 개씩 꼬박꼬박 먹는 사람이 아니다. 첫날에 두 개 먹고, 둘째 날에 한 개 먹고, 셋째 날부터 잊어버린다. 넷째 날에 보면 껍질에 갈색 반점이 생겨 있고, 다섯째 날이면 검은 점이 번져서 물렁물렁해진다. 이 시나리오를 이미 여러 번 경험했다.

바나나를 다시 내려놨다. 그리고 두 발짝 걸었다. 멈췄다. 다시 돌아와서 집었다. 1990원인데. 이걸 안 사는 게 맞나. 과일을 좀 먹어야 하는데. 건강해지고 싶은 마음이 올라왔다. 바나나 한 개에 칼로리가 대략 100정도라고 알고 있다. 아침에 우유랑 같이 먹으면 괜찮은 식사가 된다. 그 생각까지 하면 사는 게 맞다.

근데 또 생각했다. 지난번에도 이 생각을 하면서 샀다. 결과가 어땠나. 세 개를 먹고 두 개를 버렸다. 그 전에도 그랬다. 네 개를 먹고 한 개를 버렸다. 바나나를 사면 반드시 한두 개는 버리게 되는 게 나의 패턴이다. 그걸 알면서 또 사는 건 좀 어리석은 거 아닌가.

다시 내려놨다. 계란만 사자. 원래 목적대로. 계란 코너로 걸어갔다. 계란 한 판을 집었다. 계산대 쪽으로 걸어갔다. 걸어가면서 바나나 진열대가 시야에 들어왔다. 노란색이 자꾸 눈에 밟혔다. 1990원. 커피 한 잔보다 싸다. 두 개만 먹어도 본전이다. 세 개 먹으면 이득이다.

다시 돌아가서 집었다. 세 번째였다. 이번에는 안 놓겠다고 생각하면서 장바구니에 넣었다. 계산대로 갔다. 줄을 서면서도 장바구니 안의 바나나를 봤다. 지금 놓고 가도 되나. 아직 계산 안 했으니까. 그 생각이 스쳤다. 안 했다. 그냥 계산했다. 계란 한 판, 바나나 한 송이. 총 7890원.

집에 오는 길에 좀 웃겼다. 바나나 하나 사는 데 이렇게 고민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 근데 자취하면 다 이렇지 않나. 혼자 먹어야 하니까 양 조절이 안 된다. 바나나는 낱개로 안 판다. 한 송이가 최소 단위다. 세 개짜리 송이가 있으면 좋겠는데, 본 적이 없다. 네 개짜리도 가끔 있긴 한데 그건 대부분 이미 좀 익어서 반점이 있는 것들이다. 상태 좋은 건 다 다섯 개 이상이다. 1인 가구의 고충을 바나나가 모른다.

자취방 부엌 조리대 위에 갈색 반점이 생긴 바나나 두 개가 전자레인지 옆에 놓여 있는 모습

집에 와서 바나나를 꺼냈다. 어디에 두지. 냉장고에 넣으면 껍질이 까맣게 변한다. 바나나는 열대 과일이라 냉장 보관하면 껍질이 검게 변하는데, 속은 괜찮다고 한다. 근데 까만 껍질을 보면 먹기가 싫어진다. 시각적으로. 그래서 실온에 두기로 했다. 부엌 조리대 위에 그냥 올려놨다.

첫날, 두 개를 먹었다. 껍질을 까면 하얀 속살이 드러나는데, 바나나 냄새가 났다. 달큰하면서 약간 풀 같은 냄새. 한 입 베어 물면 부드러우면서도 쫀득한 식감이 있다. 바나나는 씹는 맛이 독특하다. 아삭하지도 않고 물컹하지도 않고,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질감. 나쁘지 않았다. 아침에 빈속에 먹으니까 든든하기도 했다.

둘째 날, 한 개를 먹었다. 이제 두 개 남았다. 여기까지는 순조로웠다. 내일 한 개, 모레 한 개 먹으면 한 송이를 완벽하게 소진하는 거다. 한 번도 버리지 않고. 살짝 흥분됐다. 이번에는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셋째 날, 안 먹었다. 아침에 늦게 일어나서 출근 준비에 쫓겼다. 바나나를 먹을 시간이 없었다. 아니, 시간이 없었다기보다 까먹었다. 조리대 위에 있는 바나나가 눈에 안 들어왔다. 퇴근하고 보니까 바나나 껍질에 갈색 점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직은 작은 점이었다. 먹을 수 있다. 내일은 꼭.

넷째 날, 또 안 먹었다. 이유는 없다. 그냥 안 먹었다. 저녁에 라면을 끓여 먹으면서 바나나를 봤다. 점이 좀 커져 있었다. 내일은 진짜. 다짐했다. 다섯째 날 아침에 일어나서 바나나를 봤다. 껍질이 거의 반쯤 갈색이었다. 껍질을 까봤다. 속은 아직 괜찮았다. 좀 물렁해지긴 했는데 먹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한 개를 먹었다. 너무 달았다. 바나나가 과숙되면 전분이 당분으로 바뀌면서 더 달아진다고 한다. 달아서 좋다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좀 느끼하게 느껴졌다. 노란 바나나의 깔끔한 단맛이 좋은데, 갈색 반점 바나나의 단맛은 좀 무겁다.

마지막 한 개는 그날 저녁까지 안 먹었다. 다음 날 보니까 껍질이 거의 검었다. 까봤다. 속이 물렁물렁했다. 군데군데 갈색 부분이 있었다. 먹을 수 있는지 없는지 애매한 상태. 결국 버렸다.

다섯 개 중 네 개. 성적은 나쁘지 않았다. 근데 완벽하진 않았다. 그 한 개가 아쉬웠다.

외할머니 댁에서 바나나가 버려지는 걸 본 적이 없다. 외할머니가 바나나를 사오시면 며칠 안에 다 없어졌다. 나도 먹고 외할머니도 드시고. 혼자가 아니니까 가능한 일이었다. 두 사람이 먹으면 다섯 개가 이틀이면 끝난다.

다음에 마트에서 바나나를 보면 또 고민할 거다. 집었다 놨다를 반복할 거다.

그래도 결국은 살 것 같다. 1990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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