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컵과일과 직접 깎아먹기, 결국 어느 쪽이 더 귀찮을까
편의점 냉장 코너에서 컵과일을 처음 집어든 건 작년 여름이었다. 퇴근길이었고 더웠고 뭔가 시원한 게 먹고 싶었다. 아이스크림을 사려다가 옆에 있는 투명 컵이 눈에 들어왔다. 멜론, 파인애플, 포도가 작게 잘려서 담겨 있었다. 3900원. 비싸다고 생각했다. 근데 샀다. 더우면 판단력이 흐려진다.
집에 와서 뚜껑을 열고 포크로 하나 찍어 먹었다. 차가웠다. 달았다. 근데 뭔가 좀 밋밋했다. 멜론은 단맛이 있긴 한데 향이 거의 없었고, 파인애플은 약간 질겼고, 포도는 포도 맛이 맞긴 한데 뭐랄까, 무표정한 맛이었다. 맛이 없는 건 아닌데 기억에 남지 않는 맛. 먹고 나서 뭘 먹었는지 금방 잊어버릴 것 같은 맛. 컵 바닥에 과일 즙이 좀 고여 있었는데 그건 안 마셨다. 왜인지 모르겠는데 그건 좀 꺼려지더라.
그날 밤에 생각했다. 3900원이면 마트에서 사과 두 개를 사고도 남는다. 포도 한 송이도 살 수 있다. 직접 사서 직접 깎으면 양도 더 많고 맛도 더 낫지 않나. 그래서 다음 날 마트에서 사과를 두 개 샀다. 의욕이 있었다. 직접 깎아먹겠다는 의지가 있었다.
집에 와서 과일칼을 꺼냈다. 사과를 씻고, 도마에 올리고, 깎기 시작했다. 껍질이 두꺼워졌다. 늘 그렇다. 얇게 깎으려고 하면 칼이 미끄러지고, 그러면 무서워서 두껍게 깎게 된다. 한 알 깎는 데 한 5분 걸렸다. 깎고 나니까 도마 위에 껍질이 수북하고, 사과는 원래 크기의 7할 정도로 줄어 있었다. 먹을 수 있는 부분만 놓고 보면 컵과일이랑 양이 비슷한 것 같기도 했다. 그건 좀 슬펐다.
접시에 담아서 먹었다. 확실히 달랐다. 방금 깎은 사과는 살아있는 맛이라고 해야 하나. 수분이 입 안에서 터지는 느낌이 있었다. 아삭하고 시원하고, 향도 확실했다. 편의점 컵과일에서 느꼈던 그 밋밋함이 없었다. 사과 한 알의 승리. 그렇게 생각했다.
근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먹고 나서 도마를 씻고, 칼을 씻고, 껍질을 버리고, 싱크대에 튄 사과즙을 닦아야 했다. 5분 깎고 3분 먹고 7분 치운 거다. 총 15분. 편의점 컵과일은 뚜껑 열고 먹고 컵을 버리면 끝이다. 총 5분도 안 걸린다.
이 시간 차이가 생각보다 크다. 특히 퇴근 후에. 하루 종일 일하고 집에 들어오면 그 15분이 산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과일을 씻고 깎고 접시에 담고 먹고 치우는 그 과정 전체가 피곤한 거다. 맛은 직접 깎는 게 낫다는 걸 알면서도 몸이 안 움직인다. 그래서 또 편의점에서 컵과일을 산다. 3900원을 내면서.
한동안 둘을 번갈아가면서 먹어봤다. 주중에는 컵과일, 주말에는 직접 깎기. 그렇게 하니까 좀 나았다. 주중에 죄책감 없이 컵과일을 먹고, 주말에는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깎아먹으면 둘 다 만족스러웠다. 이게 나름의 타협점이었다.
근데 솔직히 컵과일에는 아쉬운 점이 좀 있다. 과일이 미리 잘려 있으니까 단면이 공기에 노출된 시간이 길다. 그래서 식감이 좀 물렁해져 있을 때가 있다. 특히 멜론이 그렇다. 멜론은 자르자마자 먹어야 제맛인데, 컵에 담긴 멜론은 자른 지 몇 시간이 지난 거니까 물컹한 느낌이 강하다. 파인애플은 그나마 괜찮은데, 가끔 심 부분이 섞여 있으면 질겨서 씹기 힘들다.
가격도 따져보면 직접 사서 깎는 게 압도적으로 싸다. 컵과일 한 개에 3900원이면, 그 돈이면 마트에서 제철 과일을 꽤 살 수 있다. 사과 두 개, 귤 한 망, 바나나 한 송이. 양으로만 보면 비교가 안 된다. 근데 그건 내가 깎을 수 있다는 전제가 붙는 거다. 안 깎으면 냉장고에서 썩는다. 4번 글에서 쓴 포도처럼.
그러니까 결국 이런 거다. 직접 깎으면 맛있고 싸지만 귀찮고, 편의점 컵과일은 비싸고 밋밋하지만 편하다. 이 두 가지 사이에서 완벽한 정답은 없다. 나 같은 자취생에게 과일은 항상 이 딜레마 안에 있다.
외할머니 댁에서는 이런 고민이 없었다. 과일은 깎여서 나왔고, 씻을 필요도 없었고, 먹기만 하면 됐다. 그게 얼마나 럭셔리한 상황이었는지 혼자 살아보고 나서야 알았다. 누군가가 과일을 사고, 씻고, 깎아서 접시에 담아 내 앞에 놓아준다는 건, 컵과일의 편리함과는 차원이 다른 종류의 편안함이다. 거기에는 손이 담겨 있으니까.
지금 내 냉장고에는 사과 한 알과 편의점에서 산 컵과일 하나가 같이 들어있다. 사과는 사흘째 그대로 있고, 컵과일은 내일이 유통기한이다.
아마 컵과일을 먼저 먹을 것 같다. 사과는 또 미루겠지.
이러면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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