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는 복숭아를 드실 때 항상 껍질째 드셨다

 복숭아가 익으면 표면에 솜털 같은 게 보인다. 빛을 받으면 얇은 털이 하나하나 서 있는 게 보이는데, 어릴 때 나는 그게 너무 싫었다. 손에 닿으면 까끌까끌하고, 그 느낌이 입술에 닿을 생각을 하면 소름이 돋았다. 복숭아는 좋아했다. 달고 물이 많아서. 근데 그 껍질만은 도저히 못 참겠었다.

외할머니는 복숭아를 껍질째 드셨다. 물에 한번 헹구고 그냥 베어 무셨다. 즙이 손등으로 흘러내리면 반대쪽 손등으로 닦으시면서 드셨다. 맛있다는 말도 안 하셨다. 그냥 조용히 드셨다. 가끔 씨 주변에 붙은 살을 이로 긁어내듯 드시는데, 그 소리가 좀 거슬렸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하면 미안한 기억이다.

빛바랜 꽃무늬 접시 위에 솜털이 보이는 잘 익은 복숭아 두 알이 놓여 있는 모습


나는 매번 깎아달라고 했다. 외할머니가 복숭아를 꺼내시면 나는 반사적으로 "깎아주세요" 했다. 외할머니는 그러마 하고 칼을 꺼내셨다. 복숭아 껍질을 깎는 건 사과보다 어렵다. 물러서 칼이 자꾸 파고들고, 껍질이 얇아서 살이 같이 벗겨진다. 외할머니 손에서도 껍질이 깔끔하게 벗겨지진 않았다. 중간중간 살이 뜯겨나가면서 울퉁불퉁한 표면이 됐다. 근데 나는 그래도 그게 좋았다. 까끌까끌한 껍질이 없으면 그걸로 됐다.

외할머니는 본인 것은 안 깎으셨다. 내 것만 깎아주시고 본인은 껍질째 드셨다. 한번은 내가 왜 안 깎아 드시냐고 물었다. 외할머니가 뭐라고 했는지 정확히는 기억 안 나는데, 대충 이런 뜻이었다. 깎으면 버리는 게 많아서. 복숭아는 껍질 바로 밑이 제일 달다고. 그걸 깎아내면 아깝다고.

그때는 그 말이 이해가 안 됐다. 껍질이 까끌까끌한데 그게 뭐가 달다는 건지. 어린 나한테는 그냥 싫은 게 싫은 거였다. 외할머니의 이유 같은 건 관심이 없었다. 그냥 깎아주시면 됐다.

여름마다 복숭아 상자가 외할머니 댁에 들어왔다. 누가 보내준 건지 직접 사신 건지는 잘 모르겠다. 둘 다였던 것 같기도 하다. 복숭아 상자를 열면 하얀 스티로폼 틀에 복숭아가 하나씩 박혀 있었다. 그 틀을 빼면 복숭아 냄새가 확 올라왔다. 달큰하면서 약간 꽃 같은 냄새. 그 냄새는 좋았다. 냄새는 까끌까끌하지 않으니까.

외할머니는 상자에서 복숭아를 꺼내실 때 하나하나 눌러보셨다. 손가락으로 살짝 누르면서 익은 정도를 확인하는 거였다. 말랑한 건 오늘 먹고, 단단한 건 하루 이틀 더 두고. 그걸 분류하시는 게 꽤 진지했다. 지금 생각하면 외할머니만의 시스템이 있었던 것 같다. 복숭아 관리 시스템.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니고 수십 년 복숭아를 먹으면서 몸에 밴 거겠지.

나는 그런 거 전혀 모른다. 복숭아를 고를 때 단단한 게 좋은 건지 말랑한 게 좋은 건지도 잘 모른다. 마트에서 그냥 제일 예뻐 보이는 걸 고른다. 그래서 실패할 때가 많다. 집에 와서 먹었는데 딱딱하고 안 달거나, 너무 물러서 손에서 으깨지거나. 외할머니처럼 눌러보면 알 수 있는 건가 싶어서 눌러본 적도 있는데, 솔직히 뭘 느껴야 하는 건지 모르겠더라.

흰 플라스틱 접시 위에 반으로 잘린 복숭아의 단면과 씨가 보이는 모습

자취하면서 복숭아를 직접 깎아본 적이 있다. 딱 한 번. 과일칼로 깎았는데 생각보다 너무 어려웠다. 칼이 들어가면 살이 같이 뭉개지면서 즙이 손에 흘렀다. 껍질이 얇아서 어디까지가 껍질이고 어디부터가 살인지 경계가 모호했다. 힘을 주면 파고들고 힘을 빼면 안 벗겨지고. 한 알 깎는 데 거의 10분 걸렸다. 깎고 나니까 원래 크기의 반 정도로 줄어 있었다. 접시에 담아놓으니까 좀 처량했다.

먹으면서 생각했다. 외할머니가 이걸 매번 해주셨구나. 나한테 깎아달라고 할 때마다 칼을 꺼내서 이 짓을 하셨구나. 미끄럽고 물렁한 복숭아를 붙잡고 껍질을 벗기는 게 이렇게 번거로운 건데, 한 번도 싫은 내색을 안 하셨다. 그냥 깎아서 접시에 담아주셨다. 울퉁불퉁해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나는 껍질만 없으면 됐으니까.

그때 외할머니가 왜 본인은 껍질째 드셨는지 좀 알 것 같았다. 깎으면 버리는 부분이 많아서라고 하셨는데, 그것도 맞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을 것 같다. 그냥 귀찮으셨던 거다. 본인 것까지 깎을 여력이 없었던 거다. 손주 것 하나 깎는 데 힘을 다 쓰셨으니까. 근데 그걸 귀찮다고 안 하시고 맛있으니까 그런다고 하셨다. 껍질 밑이 제일 달다고.

지금 나는 복숭아를 껍질째 먹는다. 깎기 귀찮아서다. 까끌까끌한 느낌은 여전히 좋아하진 않는데, 참을 수 있게 됐다. 물에 제대로 씻고 먹으면 의외로 괜찮다. 표면의 솜털이 물에 젖으면 좀 눌러지면서 덜 거슬린다. 그리고 외할머니 말이 맞았다. 껍질 바로 밑이 확실히 더 달다. 깎으면 그 부분이 날아간다. 그걸 서른 가까이에서야 직접 먹어보고 알았다.

복숭아를 베어 물 때 즙이 턱을 타고 흘러내리면, 가끔 외할머니가 손등으로 입가를 닦으시던 모습이 겹친다. 아주 잠깐. 그 모습이 그때는 좀 지저분해 보였는데, 지금은 그냥 복숭아를 먹는 제일 자연스러운 방법이었구나 싶다.

올여름에도 복숭아를 살 거다. 마트에서 제일 예뻐 보이는 걸로. 눌러보겠지만 아마 또 잘 모를 거다.

그래도 껍질째 먹을 거다. 이제는 그게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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