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두 시에 수박을 잘랐는데 그 소리가 온 집에 울렸다

 잠이 안 왔다. 그날따라 유독 안 왔다. 이불을 걷어차고 천장을 보다가, 폰을 보다가, 다시 천장을 보다가, 결국 일어났다. 시계를 보니 새벽 두 시 조금 넘었다. 배가 고픈 건 아니었는데 뭔가를 씹고 싶었다. 냉장고를 열었다. 형광등 불빛이 어두운 부엌을 비추면서 눈이 잠깐 부셨다. 냉장고 맨 아래 칸에 수박이 있었다. 이틀 전에 마트에서 산 건데, 아직 안 잘랐다. 통째로.

자취방 좁은 싱크대 위에 놓인 통수박과 그 옆의 큰 칼

사실 이 수박을 산 것 자체가 실수였다. 반통만 사려고 갔었다. 근데 반통이 오천 원이고 통이 칠천 원이길래, 그 이천 원 차이가 아까워서 통으로 샀다. 혼자 사는 사람이 통수박을 사면 어떻게 되는지 그때는 몰랐다. 냉장고에 넣으니까 다른 걸 넣을 자리가 없었다. 반찬통 두 개를 꺼내고, 우유를 문쪽으로 옮기고, 겨우 집어넣었다. 그 상태로 이틀이 지난 거다.

새벽 두 시에 수박을 자르겠다는 생각은, 지금 돌아보면 좀 이상한 판단이었다. 근데 그 시간에는 그게 합리적으로 느껴졌다. 어차피 잠도 안 오고, 수박은 자르긴 해야 하고, 지금 아니면 또 미룰 것 같고. 그래서 칼을 꺼냈다. 과일칼로는 안 될 것 같아서 식칼을 꺼냈다. 도마 위에 수박을 올렸는데 도마가 수박보다 작았다. 수박 양쪽이 도마 밖으로 삐져나왔다. 좀 불안했지만 그냥 잘랐다.

칼이 수박 표면에 닿는 순간, 껍질이 갈라지면서 쩍 하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가 생각보다 컸다. 원룸이라 부엌이랑 방이 붙어있으니까 소리가 갈 데가 없다. 벽에 부딪히고 돌아오는 느낌이었다. 조용한 새벽에 수박 쪼개지는 소리는 꽤 폭력적이더라. 아래층에 들렸을 수도 있다. 잠깐 멈칫했다가, 이미 벌어진 일이니까 그냥 끝까지 밀었다.

수박이 반으로 갈라졌다. 속이 빨갰다. 씨가 좀 많았지만 빨간색이 진해서 일단 마음이 놓였다. 솔직히 수박은 잘라보기 전까지는 모르는 거 아닌가. 겉을 아무리 두드려봐도 속이 하얀 수박이 나올 때가 있으니까. 이번에는 다행이었다.

플라스틱 도마 위에서 반으로 갈린 수박의 빨간 속살이 보이는 모습

반쪽을 또 반으로 잘랐다. 그러니까 4분의 1이 된 거다. 그걸 또 먹기 좋게 자르려고 했는데,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수박즙이 도마 위에 고이기 시작한 거다. 도마 아래로 흘러서 싱크대 위가 물바다가 됐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수박 자를 때 신문지 깔고 하는 거구나. 그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우리 집에 신문지는 없다.

행주로 닦으면서 한 쪽을 입에 넣었다. 차가웠다. 이틀 동안 냉장고에 있었으니까 속까지 시원했다. 달았다. 씨를 뱉으려고 싱크대 위에 고개를 숙였는데, 그 자세가 좀 비참했다. 새벽 두 시에 부엌 형광등 아래에서 수박 한 쪽 물고 싱크대에 씨를 뱉는 모습. 누가 봤으면 좀 웃겼을 것 같다.

근데 맛있었다. 진짜 맛있었다. 새벽에 먹는 수박이 이렇게 다른 건지 몰랐다. 낮에 먹을 때보다 단맛이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조용하니까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소리가 없으면 맛에 집중이 더 되는 건지, 아니면 새벽이라 감각이 좀 예민해진 건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달랐다.

두 쪽을 먹고 나니까 손이 끈적거렸다. 수박즙이 손목까지 흘러내렸다. 팔꿈치 쪽까지 간 건 아닌데, 손목에서 멈춘 상태로 말라가고 있었다. 싱크대에서 손을 씻으면서 생각했다. 나머지 수박은 어떻게 하지. 4분의 3이 남아있었다. 랩을 씌워서 냉장고에 다시 넣었는데, 아까보다 자리가 더 없었다. 잘라놓으니까 반통은 접시에 담아야 했고, 접시가 냉장고에서 공간을 더 차지했다. 반찬통을 하나 더 꺼냈다.

설거지를 하면서 시계를 봤다. 두 시 반이었다. 수박 하나 자르는 데 삼십 분이 걸린 거다. 도마 닦고, 싱크대 닦고, 바닥에 튄 것까지 닦으니까 그렇게 됐다. 혼자 사는 사람이 수박을 먹으려면 이 과정을 다 감수해야 한다는 걸 그날 알았다. 맛있긴 한데 수고가 크다.

이불에 다시 누웠을 때 입 안에 수박 맛이 남아있었다. 달면서 시원한, 그 물 같은 단맛. 배가 차서인지 잠이 좀 올 것 같았다. 그런데 문득 생각났다. 외할머니 댁에서 여름에 수박 먹던 거. 외할머니는 수박을 크게 잘라서 대야에 담아주셨는데, 씨를 미리 빼주시진 않았다. 대신 씨를 뱉을 수 있게 빈 접시를 하나 더 놓아주셨다. 그 접시에 까만 씨가 쌓이는 걸 보는 게 좀 재미있었다.

외할머니는 수박을 드실 때 소리를 내셨다. 시원하다, 하면서. 그 한마디가 여름이었다. 지금 나는 수박을 먹으면서 아무 말도 안 한다. 혼자니까. 시원하다고 말해줄 사람도, 들어줄 사람도 없으니까. 그래서 그냥 조용히 먹는다.

새벽 두 시에 수박을 자르는 건 추천하지 않는다. 소리가 크고, 즙이 많이 튀고, 뒷정리가 귀찮다. 근데 가끔은 그런 비합리적인 선택이 밤을 좀 낫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잠이 안 오는 밤에 차가운 수박 한 쪽이 해줄 수 있는 일이 생각보다 많다.

다음에 또 잠이 안 오면 자를 것 같다. 솔직히.

그때도 아마 이천 원 아끼겠다고 통으로 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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